◆.세상에 이런일들이.

중국 역사적으로 이름난 미인들

바람개비(적벽) 2012. 2. 11. 03:19

 

 

 

조비연(趙飛燕)

 

중국 한나라 황후 조비연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장 날씬한 여인으로 불렸다.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 이름 "조의주" 대신 조비연으로 불렸다. 뛰어난 몸매에 가무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녀는 한나라 성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한번은 황제가 호수에서 선상연을 베풀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자 춤을 추던 조비연이 휘청 물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가. 황제가 급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는데 춤의 삼매경에 빠진 조비연은 그 상태에서도 춤추기를 그치지 않아서 조비연은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

이런 연휴로 "비연작장중무(飛燕作掌中舞)" 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임금의 총애를 받은 비연은 세상에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세월은 겨우 10년, 황제가 죽자 조비연은 탄핵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평인으로 걸식을 하다가 자살로 그 생을 끝맺고 만다.

중국에서 미인을 표현 하는 대표적인 어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이다. 그중에서 각각 "침어(沈魚)", "낙안(落雁)", "폐월(閉月)", "수화(羞花)"의  대명사 격인 4명의 여인을 골랐으니 이들을 일컬어 [ 중국 4대 미인] 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4대미인에서 탈락한 미녀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조비연(趙飛燕)이다. 탈락한 이유는 그녀의 특징이 아름다움보다 몸가짐이 가벼움에 치우쳤기 때문인 듯 싶다. 대신 그녀를 지칭할 때는 항상 4대 미인의 한 사람인 양귀비와 더불어 거론된다.

 

바로 "연수환비(燕瘦環肥)"라는 성어인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조비연(趙飛燕)은 말랐으나[瘦] 미인이었고, 양귀비[본명: 양옥환(楊玉環)]는 뚱뚱했으나[肥] 미인이였다. 또한 흔히 일컬어 조비연(趙飛燕)은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임풍양류(臨風楊柳)형 미인, 양귀비(楊貴妃)는 풍만한 미인의 대명사로 부귀모란(富貴牡丹)형 미인.이라 한다.

 

물고기가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서시" 기러기가 나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지게 만든 "왕소군"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는 "초선"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올렸다는 "양귀비" 등 이 4대 미인들의 미모에 얽힌 고사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들이 많다.

 

채문희(蔡文姬)

 蔡邕(채옹)은 조조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그에게는 文姬(문희)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어 그 소문이 자자하였다. 삼국시대 때의 대학자였던 아버지 채옹은 동탁이 한달만에 벼슬을 세번이나 올려줄 만큼 뛰어난 인물로이 당시에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었고(그러나 그는 생전에 수천권의 저서를 남겼다고 하는데 몇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모조리 소실되어 한 권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만큼 그녀 또한 시와 탄금에 능한 재원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탁이 조정을 떡 주무르듯 할 시기에 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노략질을 일삼던 흉노병에게 잡혀 흉노의 좌현왕의 첩실로 보내진 여인으로서 그녀는 그곳에서 좌현왕과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낳았다. 그리고 채옹은 동탁이 살해당해 그의 시신이 저자거리에 내버려지자 그 시신곁에서 통곡했다는 이유로 왕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채옹이 사망하자 채씨의 혈통을 염려한 조조가 천금의 돈을 흉노의 좌현왕에게 주어 그녀를 12여년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다. 채문희가 돌아오자 조조는 옛날 절친했던 채옹과의 정분을 생각했음인지 동관근처 남전 땅에 장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살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채문희를 염려해 둔전도위(벼슬이름)로 있는 동사에게 개가시키는등 특별히 애우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사는 법을 어겨 조조 수하의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받고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채문희가 조조에게 달려가 남편의 죄를 사면해 줄것을 부탁하니 조조가 흔쾌히 허락한 일화도 있다.

 

그리고 이때 조조의 부탁으로 아버지가 남긴 저서중 몇 백권을 기억하고 있던 채문희가 다시 기억을 되살려 복원하게 되었다고 하니 실로 머리가 아주 좋았나 보다. 이로 인해 조조가 채문희를 데려옴으로써 고대 문화를 보전하는 업적을 세웠다는 일부의 평가도 있다. 또한 채문희는 <비분시(悲憤詩)>와<호가십팔박(胡家十八拍)>이란 시에 원한의 글귀를 남겼는데 이 시에는 좌현왕과의 미묘한 정과 두 아이들과의 생이별을 처절하게 읊고 있다.

억지로 간 타향이지만 이미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녀이니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겨 두고 떠나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원수인 흉노의 땅에 남아 있기도 싫어서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문희가 9살 때의 일이다. 채옹이 밤에 거문고를 타는 도중 줄 하나가 끊어졌다. 옆에서 조용히 이를 듣고 있던 문희가 채옹에게 말했다.
 
"아버님, 거문고의 둘째 현이 끊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거문고의 어느 현이 끊어졌는지 정확히 알아내는 딸의 재주를 비범히 여긴 채옹은 이번엔 일부러 거문고의 현을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끊었다. 
 
"이번에는 네번째 현이 끊어졌습니다."
 
 이에 채옹이 불을 켜고 보니 과연 네번째 현이 끊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채옹은 그녀의 총명함을 널리 자랑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공격하러 가기에 앞서 채옹의 집을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조조는 채옹의 극진한 접대를 받는 도중에 그의 등뒤에 있는 병풍에 쓰인 기이한 글귀를 발견하였는데 曹娥碑文(조아비문) 끝에 채옹이 '黃絹幼婦外孫臼(황견유부외손제구)'라고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조조는 익히 문희의 총명함을 듣고 있었던 터라 그녀를 불러 그 글귀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黃絹(황견)은 노란 비단, 즉 실(絲)에 색(色)을 입힌 것이니 絲와 色을 더한 絶자가 되고, 幼婦(유부)는 어린(少) 여자(女)이니, 妙자가 됩니다. 外孫(외손)은 딸(女)의 아들(子)이니 好가 되고, 薺臼(제구)는 五辛(오신 : 맵고 짜고 시고 쓰고 아리고 한 것)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니, 즉 풀어 말하면 受와 辛을 뜻하므로 두 글자를 합치면 ?(辭자와 동자)가 됩니다. 곧, '絶妙好辭(절묘호사)'로, '절묘하고도 아름다운 좋은 글이다'라는 뜻을 나타내옵니다."
(참고로 薺는 '고추냉이 제'자로 간혹 다른 글에는 ? '회 제'자로 쓰여있다. 파, 부추 따위 매운 채소를 잘게 다져 간장 기타 조미료에 버무린 것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薺臼(제구)란, 짜고 시고 쓰고 아리고 하는 五辛을 받는 그릇, 즉 양념그릇을 뜻한다.)

이 풀이를 듣고 조조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 모두 그녀의 총명함에 감탄하였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총명함을 자랑해 왔던 그녀가 헌제 때, 북방의 흉노족에게 잡혀가 흉노의 좌현왕과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으니 미모와 지성을 함께 갖추었으나 참으로 박복하였다 할 수 있다.  

 

가도사벽     

집안이 네 벽뿐이라는 뜻으로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

가도벽립()이라고도 한다. 《한서()》 〈사마상여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탁문군()이 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오자 사마상여는 탁문군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 쓰촨성[] 청두[]로 돌아왔는데,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네 벽만 세워져 있었다[ ].'
중국 전한()의 문인으로 시를 잘 지은 사마상여는 관직에서 물러나 쓰촨성 린충[?]에 있는 왕길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린충의 대부호 탁왕손()이 베푸는 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연회에서 사마상여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사마상여를 사모하게 되었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서로 사랑하였으나, 사마상여의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탁왕손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탁문군은 사마상여를 따라 청두에 있는 그의 집으로 한밤중에 몰래 달아났다. 사마상여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 살림살이가 없고 방안에는 네 벽뿐이었으므로 탁문군은 사마상여와 결혼하여 선술집을 차려 생활하였다. 그뒤 한()나라 무제()가 사마상여의 《자허부()》를 읽고 감동하여 그에게 벼슬을 내렸는데, 사마상여가 이름을 떨치자 그때부터 탁왕손의 집안에서도 사마상여를 얕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황제는 전귀비를 몹시 총애했다. 이 때문에 황후는 전귀비를 몹시 질투했다. 그날밤도 전귀비한테로 가버린 황제를 생각하며 황후는 질투와 고민에 모대기고있었다. 그때 딸의 거처로 황후의 부친 가정백이 찾아왔다. 요즘 딸이 고민하고있는 영문을 알고있는 가정백이 한가지 계책을 드렸다.


《황후마마, 차라리 예쁜 기생을 하나 사서 황제페하께 드리면 황제페하는 그 기생에게 빠져 더는 전귀비를 총애하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낱 기생출신이니까 황제페하께서 아무리 총애한다하더라도 황후마마께는 아무런 위험이 없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 계책이 괜찮기는 하나 어디 황제페하를 홀딱 반하게 할만한 기생이 있겠어요?》
《황후마마, 소신이 전귀비보다 백배는 더 미모가 출중한 기생 하나를 알고있사옵니다.》
가정백은 지난밤, 자기의 혼을 송두리째 뽑아놓던 그 아릿다운 기생을 생각하니 지금도 온몸이 나른해나며 황홀경에 빠져있는듯 했다. 황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도가 없는지라 그 기생을 데려오로록 부친에게 명령했다.


가정백은 이튿날 곧 기녀원에 가서 그 예쁜 기생을 사서 숭정황제께 올렸다. 그 기생을 본 황제는 그 자리에서 혼이 빠져 달아나는듯 했다. 그 기생의 눈섭과 눈동자는 그린듯이 수려하고 용모는 말로 형용할수 없이 아름다웠다. 두 눈동자는 호수에 물결치듯 찰랑거리고 입술을 살짝 벌리고 웃는데 그 아름다운 자태는 양귀비도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울 지경이였다. 이 경국지색의 미녀가 바로 중국고대력사에서 4대 명기중의 하나로 불리는 진원원이였다.


《아아,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미녀로구나!》
황제는 연신 감탄하면서 가정백이 물러나기 바쁘게 진원원을 끌어안고 침대에 올랐다.
한편 황후는 황제가 더는 전귀비의 거처로 찾아가지 않으니 몹시 기뻐서 진원원을 불러들였다. 진원원의 용모가 선녀같이 아름다운것을 보고 황후는 깜짝 놀랐다. 진원원의 옥같은 손을 잡자 황후는 온몸이 나른해지고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같은 녀자인 나도 이렇게 취하는데 하물며 남자들이야 더 말해 뭣하랴.) 황후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질투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진원원을 맞아드린 숭정황제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진원원한테 넋을 송두리째 빼앗긴 황제는 진원원의 곁을 한시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조정으로 나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침실에서 진원원을 안고 즐기며 그녀에게 연지를 발라주고 눈섭을 그려주기도 하고 그녀의 발을 씻어주고 혀바닥으로 그녀의 오이씨같은 발을 핥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를 곧 귀비로 봉했다.


《짐의 보배 진귀비여! 짐은 앞으로 그대를 황후로 봉하겠소. 이제부터는 황후나 다른 귀비들 그리고 비빈이나 귀인들 가운데 한사람도 눈에 차는 녀인이 없소. 그대를 봉황이라 한다면 이 궁안의 아니, 이 세상의 다른 녀자들은 모두 오리나 게사니와 다름없소. 짐은 봉황같은 그대와 더불어 천년만년 살겠소!》


하지만 숭정황제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천하의 영웅 리자성이 맹렬한 기세로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자꾸만 날아들었다. 진원원을 아쉽게 품에서 놓아주고 조정으로 정사를 돌보러 나갔다가 정오무렵에 들어온 황제는 안색이 창백했고 눈살을 찌푸리고있었다. 황제는 갑자기 진원원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너때문에 나라일을 망치게 되였어. 네가 궁안에 머무는 며칠동안 역적 리자성이 셋채의 성을 함락했어. 넌 나라를 망치는 요녀야! 짐은 녀색에 빠진 못난이가 될수 없어. 즉시 너를 궁에서 내보내고 정치를 새롭게 해야겠어. 아아, 그 리씨 도적놈은 정말 무서운 놈이야!》
진원원은 생각했다. (도데체 리자성은 어떻게 생긴 분일까? 황제마저 무서워 벌벌 떨다니. 그분은 꼭 영웅호걸일꺼야.) 진워원은 황제마저 벌벌 떨게 한 리자성을 영웅이라고 속으로 흠모했다.


진원원은 황궁에서 나온 후 주국장 저택으로 갔다. 어느날 주국장은 잔치를 크게 차려놓고 손님을 청했다.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은 꾀꼴새같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나비처럼 춤을 추는 진원원을 보고 모두 넋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정욕으로 이글이글 타는듯한 오삼계의 눈동자가 제일 로골적이였다. 오삼계는 그 즉석에서 주국장에게 진원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주국장은 진원원을 내놓기 싫었으나 오삼계의 권세가 무서워 찍소리 못하고 진원원을 내주었다.

 

진원원을 얻은 오삼계는 천하를 통째로 얻은듯 너무도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진원원에게 혼을 송두리째 빼앗긴 오삼계는 밤낮 진원원을 끌어안고 황홀경에 빠져버리는 재미에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러다가 숭정황제의 명령을 받고 만주의 군사들이 쳐들어오는것을 막으러 산해관으로 갔다. 떠나면서도 오삼계는 진원원과 떨어지기가 아쉬워 출발시간을 지체하기까지 했다.


1644년 3월 19일, 리자성이 북경을 점령했고 숭정황제는 매산우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리자성의 부하가 오삼계의 집을 뒤지다가 천하미녀 진원원을 발견하고 곧 붙잡아서 리자성에게 바쳤다. 천하제일미녀를 본 리자성은 미칠지경으로 기뻤다. 그는 매일밤 진원원과 잠자리를 같이 하며 즐거운 신음을 뽑아냈다. 진원원은 이처럼 정력적인 남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영웅에게 기꺼이 몸을 내맡겼다.


한편 오삼계는 리자성이 북경을 점령하고 자기의 미녀를 가로채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분하여 만주사람들과 련맹하여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리자성은 싸움에서 패하였지만 진원원을 끌어안고 호탕하게 웃었다.


《나의 보배 진원원이여! 짐은 한평생 세가지 자랑할만한 큰일을 했어. 첫째는 명나라 황제를 핍박하여 죽게 만든것이고 둘째는 짐이 대순국의 황제가 된것이고 셋째는 천하제일미녀 진원원을 데리고 잔것이야. 이 세가지 일중에서 짐이 가장 의기양양하게 여기는것은 세번째 일이야. 진원원이여! 짐이 너를 안고 자봤으니 이제 죽어도 원이 없노라!》


리자성은 오삼계에게 패하여 도망치다가 눈물을 뿌리며 진원원과 혜여졌다. 오삼계의 부하는 진원원을 발견하자마자 그녀를 데리고 가서 오삼계에게 바쳤다. 진원원을 다시 안은 오삼계는 너무도 기뻐서 미칠지경이였다. 오삼계는 진원원의 속살을 파고들며 말했다.


《나의 귀염둥이 진원원이여!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매국노라고 욕하지만 너를 다시 얻었으니 그와 같은 악명을 듣는것도 보람있는 일이야!》
진원원은 오삼계의 정에 감격하여 그가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역적이라는것도 잊고 기꺼이 그에게 몸을 내맡겼다.


그후 오삼계는 청나라의 평서왕으로 봉해졌다. 그때 천하제일의 무림고수로 불리는 호일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 이름난 영웅호걸이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사천성 성도에서 진원원을 보게 되였다. 아름다운 녀인은 소매자락속에 있는 옥과 같은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방긋 웃고있는데 온갖 교태가 뚝뚝 떨어졌다. 호일지는 온몸이 나른해지고 취해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였다.

 

진원원은 천하의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보기만 하면 하나같이 넋을 잃는 광경을 수없이 많이 보아서 호일지가 자기를 보자마자 얼이 빠지는것을 보고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호일지는 그후부터 혼백을 빼앗겨 정신을 차릴수도 없게 되였다. 몰래 진원원일행을 따라 운남에까지 간 그는 곧 신분을 감추고 평서왕부에서 원예사노릇을 하며 진원원을 위해 꽃을 심고 잡초를 뽑아주곤 했다. 그는 진원원의 미색에 빠져 기꺼이 그녀의 하인노릇을 하며 그녀를 위해 채소를 가꾸고 땅을 쓸며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다. 그는 매일매일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수 있는것만으로도 무상의 쾌락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줄곧 23년동안 진원원의 하인노릇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그녀를 보기만 하면 만족할수 있었다. 이 23년동안 진원원은 그에게 쉰다섯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그는 진원원이 자기에게 한 마디마디를 한마디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했다. 어느날 진원원은 그를 보고 꽃을 꺾어오라고 했다. 그는 너무도 행복했다. 진원원을 위해 꽃을 꺾는 일이 그의 일생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였다.

 

그는 가슴을 들먹거리며 꽃중에서 제일 탐스럽고 제일 예쁜 꽃을 꺾어왔다. 그가 넘겨주는 꽃을 봤던 진원원은 무심결에 그의 손목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 순간 호일지는 너무도 감격스럽고 행복하여 넋을 잃을 지경이였다. 그후 호일지는 천하제일미녀의 섬섬옥수가 닿았던 자리에 코를 대고 미녀의 향기를 맡으며 련 사흘동안 흥분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아, 천하제일미녀 진원원이여!》하고 크게 부르짖고는 곧 숨을 거두었다.

 

 

한나라 무제(武帝 : 한무제)는 한나라 황제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보위에 있었는데, 궁녀들은 무려 8천명에 이르렀고 61세 때에도 젊은 여인 첩여( : 후궁의 직위) 조씨(趙氏) 여인을 총애하여 불릉(弗陵)이라는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한무제는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비결(秘訣)로 하늘의 일정(日精)과 해와 달의 정기(精氣)를 복용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 장안의 궁에 백량대(柏粱臺)를 세우고 그 위에 동인(銅人)을 세웠다고 합니다.
  
  백량대는 높이는 20장(丈), 구리기둥의 둘레는 10아름이고, 이 동인은 승로반(承露盤)이라는 쟁반을 손으로 받쳐 들어 삼경이 되면 북두칠성의 영이 서린 이슬을 받습니다. 황제는 이 이슬에다가 옥(玉)을 갈아서 가루를 내어 타서 마셨다고 합니다.
  
  황제들의 삶은 항상 여인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여인들의 매력에 쉽게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녀간의 가슴 뛰는 사랑이 지속되는 것은 18개월~30개월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남녀가 만난 지 2년 정도가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사랑의 감정에 관여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등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1999년 신디 하잔 교수(미국 코넬대)의 연구결과 남녀가 서로 얼굴을 익히고 데이트를 하고 육체적으로 결합해 아이를 낳는 과정은 18~30개월이면 끝나는데, 이 단계가 지나면 남녀는 더 이상 가슴이 뛴다거나 손에 땀이 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하잔 교수는 “애정이라는 것은 대뇌에서 도파민과 같은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생리적인 상태”이며 사귄 지 2년쯤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애정 효과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문제지요. 여자는 남자의 아기를 낳았으니 더욱 그 남자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남자의 사랑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식기 시작하니까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즉 아이를 낳고 나면 애정 화학물질은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30개월 정도가 지나면 남녀가 헤어지거나 헤어지지 않더라도 애정이 습관으로 변질된다는 것이죠. 이 조사는 남자가 여자에 비하여 쉽게 사랑에 빠지며 여성의 대뇌에 있어서 애정 화학물질의 생성이 남성에 비하여 느리고 둔하다고 합니다.